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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수공 묘표(국역)
공의 휘는 사관(思寬)이니 합천군수를 지내셨다. 묘는 양주 동오리 송산 선영에 있었더니 국가의 택지로 수용되어 적성 노곡방 적대촌 뒷산 인원에 이장하였다. 전배(前配)는 원주원씨니 감역을 지낸 언보의 따님이며, 후배(後配)는 온양정씨이니 첨정을 지낸 구붕의 따님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충(冲)이니 음사로 금부도사를 지냈고, 따님은 정영과 이청형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손자는 겸제(兼濟)고, 증손은 정(楨)이며, 현손 만기(曼期)는 문과에 정언을 지냈고, 유기(悠期)는 숙종조에 문과하여 장령을 지냈다. 이 이하는 번다하여 기록치 않는다.
오호라, 우리 윤씨의 중간 세대는 고려와 조선이 바뀌는 즈음에 처하여 세대가 멀고 사적이 인멸되었으며 보승 또한 기록이 결여되어 그 행적을 더듬을 문헌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일은 나라의 경우에도 그러하여 공자께서 기와 송은 징험할 문헌이 부족하다고 한탄하셨으니 한 집안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종회장 종신이 이 일을 주간하여 그 비문을 청하거늘 내가 사양치 못하고 의심나는 것은 빼고 기록하기를 우측과 같이 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