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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태위공파교리공종회

문숙공 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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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 윤관

 

m01.png 5세 문숙공 윤 관(文肅公 尹 瓘)

 

 

papyeongyun3_07.jpg고려 때 파평현(지금의 파주)에서 탄생하시었는데 함안파 언전의 문숙공 사주(四柱)에 따르면 정종 6년(서기 1040년) 6월 1일 사시(巳時)에 탄생하시었다고 전한다. 공의 휘는 관이요 자는 동현(同玄)이시고 호는 묵재(默齋)이시며 시호는 문숙이신데시조 태사공의 현손(玄孫)이시고 아버지는 문정공(文靖公) 휘 집형(執衡)이시다. 고구려 옛 강토인 북녘의 실지(실지)를 회복하여 민족전성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웅도하(熊圖下)에 30만 대군을 이끌고 두만강건너 7백리 까지 진격하시여 여진을 정벌, 천리변경에 9성을 쌓으시고 40만의 남방민을 그곳에 이주시킴으로써 민족발전을 이룩하신 문숙공이야말로 이 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척지회강(拓地恢疆)의 위업을 성취하신 영걸(英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려 예종 2년(서기1107년)10월20일 마침내 여진 대정벌의 묘의(廟議)가 결정되니 문숙공은 행영 대원수로 임명받으시고 4차에 걸친 여진정벌로 타격을 입혔으며 궁지에 몰린 여진은 예종4년 6월 당황한 나머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배반치 않고 대대손손 조공을 받치 겠다는 조건하에 9성을 여진에 돌려 주었다. 이에 예종은 공을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지군국중사(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 門下侍中 判尙書吏部事 知軍國重事)에 임명하고 내시랑중(內侍郞中) 한교여를 보내어 조서(詔書)와 고신(告身) 및 자수안구(紫繡鞍具)와 궁중의 말 2필을 가지고 웅주에 가서 하사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