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유래
○ 윤(尹)씨 성(姓)의 기원
기록에 나타난 윤씨 성의 기원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의하면 중국 고대에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라는 삼황(三皇)이 있었는데 그 중 황제의 아들 소호김천씨(小昊金天氏)의 계비(繼妃)에 반(般)이라고 부르는 아들이 있었다. 반이 궁정(弓正)이라는 관계로써 분주(汾州)땅에 있는 옹주(雍州)의 성주(城主)가 되는 윤(尹)의 벼슬로 봉하게 되었는데 그의 자손들은 옹주성윤(雍州城尹)의 후손이라 하여 윤(尹)자를 따서 성으로 쓰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성통보(萬姓統譜),황명통보(皇明統譜)등 윤씨 성을 가진 분들의 기록이 있으나 가장 두드러지게 뛰어난 분은 신라와 고려초에 걸쳐서 문헌에 나타난 벽상삼한익찬공신(壁上三韓翊贊功臣)의 칭호를 받으시고 삼중대광(三重大匡)의 문산계(文散階)에 태사라는 관직에 오르신 파평윤씨의 시조 태사공 (태사公)휘 신달(諱 莘達)한분 뿐이시다.
○ 파평윤씨의 역사
파평 윤씨 시조는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공으로 고려 초 공신 반열에 오른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성연원고(尹姓淵源考)」에는, 시조가 파주 파평산 아래 용연(龍淵)이란 못에 떠오른 옥함에서 나왔는데, 함을 건진 노파의 성을 따라 윤씨가 되었다거나, 손바닥에 '윤(尹)'이란 글자가 있어 성으로 하였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한편, 윤신달의 5세손 윤관(尹瓘)[?~1111]이 여진족을 평정하고 동북구성을 쌓은 공으로 영평현(鈴平縣)[영평은 파평의 별칭] 개국백(開國伯)에 봉하여지자, 이후로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 영원한 고향 파평(坡平)
같은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 이 사람은 혹시 자기와 혈통이 같은 일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서로 본(本)을 물어 보게 된다. 성은 같은 조상을 갖는 같은 혈통을 나타내는 이름으로서, 본을 본관(本貫),본향(本鄕),관향(貫鄕),관적(貫籍),선향(先鄕) 등으로도 부른다.
본은 시조가 출생한 곳 또는 정착하여 살았던 곳으로 윤씨 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본을 파평(坡平)이라고 한다. 파평은 파주군 파평면 늘로리에 있는 파평산 아래 용연(龍淵)이라는 못에서 우리 시조 태사공이 탄강하신 이곳이야 말로 우리 일백이만 혈족의 영원한 고향이요 자랑스런 본향(本鄕)이 아닐 수 없다. 파주군은 경기도 북서쪽에 위치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때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이라 했던 것을 742년에서 765년 사이의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때 파해평사현에서 坡자와 平을 따서 파평현이라 개명하고, 내소군(來蘇郡,지금의 楊州)에 소속시켰다.그후 고려 현종9년 장단현에 예속시켰고 고려 문종17년에 개성부(開城府)에 예속시켰다가, 고려 현종 9년 양주에 다시 예속시켰다.
그후 여려 세월 개칭과 예속을 거쳐왔으며 연산군 10년에는 파주를 사냥터로 삼고 나머지 땅을 이웃 고을에 각각 나누워 소속시켰다가 다시 중종1년 1504년의 중종반정으로 사냥터를 폐지하고 다시 파주목으로 환원시켰으며 고종 32년에 파주목을 파주군으로 다시 고쳤다.
○ 파평윤씨의 각 파
파란 강물이 한 줄기로 흘러 가다가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듯, 한조상으로부터 서로 갈라져서 후손이 대를 이어가는 계통을 말하며, 파계(派系)를 줄여서 파(派)라고 부른다. 파의 명칭은 직계조상의 시호(諡號)라던가 봉작(封爵) 그리고 관직(官職)이나 증직(贈職) 또는 아호(雅號) 등을 사용해서 공칭호(公稱號)를 정하고 그 공칭호 밑에 파를 붙여 파의 명칭으로 부른다. 파평윤씨는 천여년의 유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자손이 번성하였으므로, 그 직계의 계통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많은 파가 생겼다. 파의 변천과정은 시조편에 게제하였으니 참고 바란다.
【파평윤씨 역사요람(파평윤씨 대종회 발행(1996년)에서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