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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태위공파교리공종회

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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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휘  돈

17世 휘 계흥

18世 휘

18世 휘

19世 휘 인복

19世 휘 인경

20世 휘  현

20世 휘

21世 휘 사관

21世 휘 사철

21世 휘 사신

20世 휘 사흠

22世 휘  즙

24世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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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휘 창래

26世 휘 명언

28世 휘 수정

30世 휘 한양조씨

31世 휘 태흥

31世 휘 태길

     

 

본문

 

m01.png 18세 사간공 증 이조참판 휘 석

 

papyeongyun4_05-3a.jpg공(公)의 휘는 석(晳)이요 자(字)는 희점(希點)이요, 호(號)는 한송(寒松)으로 성은 윤(尹)이요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시조공 휘 신달(莘達)은 고려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이시고 태사공의 현손 문숙공 휘 관(瓘)은 여진족을 정벌하신 도원수(都元帥)로 출장입상(出將入相)으로 문무(文武)를 겸비하신 청사(靑史)에 빛나는 조이시다.

 

육대조(六代祖) 태위(太尉) 휘(諱) 안비(安庇)께서는 파조(派祖)이시고 조(祖)의 휘(諱)는 돈(惇)으로 조선 태종조에 문과 급제하여 증이조판서로 옥당교리(玉堂校理)이시다. 고(考)의 휘(諱)는 계흥(繼興)이요, 벼슬은 증좌찬성으로 행삼척도호부사(行三陟都護府使)요, 비(妣)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은 영천이씨 우찬성(右贊成) 승손(承孫)의 따님이시다. 배 증정부인(贈貞夫人)은 청주경씨(淸州慶氏) 참판(參判) 여(餘)의 따님이시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시다.

 

papyeongyun4_05-3b.jpg장남에 생원 휘(諱) 인저(仁著)요, 차남에 증병조참판 서천군수 휘 인복(仁復)이요, 청주 한순(淸州 韓巡)을 여서(女壻)로 맞이하다. 공은 세종(世宗) 17년 을묘생으로 연산주(燕山主) 9년 계해 10월 30일에 별세(別世)하니 향년 69세이시다. 세조(世祖) 12년 병술에 문과 급제하여 승문원정자 사간원사간(承文院正字 司諫院司諫)을 거쳐 통례원 우통례(通禮院右通禮)에 이르셨다.

 

공은 천성이 강직하시어 대쪽 같은 곧은 선비의 정신으로 사간직을 수행하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켜 사림세력(士林勢力)을 몰아내고 기생들을 궁중에서 불러 연회를 베풀어 사치행각으로 국고(國庫)를 거덜내고 국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공신전(功臣錢)을 몰수하는 광적(狂的)인 폭정(暴政)을 자행함에 일일이 충심으로 직간(直諫)을 하시다가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미움을 사고 돌아가신 이듬해에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켜 공의 무덤이 헐려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천양지화(泉壤之禍)를 입으셨다. 오직 일신의 영달(榮達)과 안위(安危)에는 아랑곳없이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행하신 청사(靑史)에 길이 새길 영예(榮譽)로운 일이었다.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후일(後日)에 신원(伸冤)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追贈)되다. 반천 년 간 수호(守護)해오던 동오리(東梧里) 외송산(外松山) 선영(先塋)을 국가토지수용령(國家土地收用令)에 의하여 부득이 연천 노곡리(漣川 蘆谷里) 선산(先山)으로 면례(緬禮)할 때 外9대손 판중추 이의현 찬(判中樞李宜顯撰)하고 7대손 예조판서 양래(陽來) 서(書)한 구묘갈(舊墓碣)도 함께 옮겨 놓고 공(公)의 명예로운 업적(業績)을 새 비(碑)에 다시 기린다.

 

폭군(暴君)의 광난(狂亂) 앞에 충직(忠臣)으로 간(諫)하시다

죽어 잠든 무덤 헐어 천양(泉壤)의 화(禍) 입으셨다.

청사(靑史)에 우뚝 빛나실 사간공(司諫公)의 지조(志操)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