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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협판공 배 한양조씨 묘표(국역)
부군의 휘는 유성이고 자는 사종이며 관은 내부협판에 추증되었다. 파평윤씨의 시조인 고려조 태사를 지내신 휘 신달의 30세손이다. 시조 이하의 역대 세손은 선대의 묘문에 실려 있어 생략하고 이후 동지중추부사를 지내신 명언, 문과에 합격하여 대사간에 오르신 면승, 사복시 첨정을 지낸 수정은 각각 군의 고조 증조 조부이다. 군의 아버지의 휘는 희대인데 합천군수를 지냈고 비서승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풍양조씨로서 생원인 진실의 딸이다. 공은 순조 갑술년에 태어났고 현종 병오년에 돌아가셨는데 묘는 양주 동면 송산 참판공 묘 앞 자원에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실전되었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배부인은 한양조씨로 진사인 정만의 딸인데 생졸일이 전하지 않고 묘는 동오리 첨정공의 묘 앞 손원에 있었는데 국가의 택지개발로 인해 수용되어 부득이 무인년 겨울 노곡리 적대촌 뒷산 인원에 이장하였다. 혈육이 없어 영남 성주에 우거해 있던 족질을 양자로 삼았으니 휘는 태흥이고 자는 문익이요 호는 성산인데 갑자에 진사가 되었고 임오에 문과에 합격하여 응교 동부승지를 거쳐 가의대부의 품계에 올라 경기관찰사를 지냈다. 본생고의 휘는 종성이고 본생비는 성주이씨 현덕의 딸이니 도은 숭인의 후손이다. 손자인 형식은 신묘년 진사가 되어 중추원의관을 지내고 증손으로는 병위와 병린이 있으며 증손녀는 경주 이승우에게 시집갔다. 현손으로는 백균과 흥균이 있고 흥균은 병필의 양자가 되었다. 이하는 번거로와 다 기록치 않는다. 종현손 되는 종균과 정웅 두 족숙께서 나에게 비문을 청함에 삼가 오른쪽과 같이 서술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