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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 유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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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의 동쪽에 위치한 파평산의 중턱에 큰 돌로 쌓아놓은 흔적이 남아 있고 그 부근에 미타사라는 절이 있는데 석축이 있는 곳은 시조 태사공의 주택이 있던 곳이라고 하며 3세 복야공께서 절을 지어 금강사(金剛寺)라 하였다는 곳을 금강사 유허지라고 부르는데 미타사에는 문숙공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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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음진(如飮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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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태사공께서 파주의 사저에서 말을 타시고 임진강을 건너 개경(開京)을 내왕하실 때 항상 강물이 양쪽으로 딱 갈라져 단숨에 강을 건너시었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물결 끊고 마시듯 강을 건넜다하여 이곳을 여음진이라고 불렀다하며 여음진이 변해서 임진강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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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서원유허지 (鳳岡書院遺墟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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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833년(순조 33)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암동에 세웠던 봉강서원이 서원철폐 시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는데 태사공의 묘소에서 남쪽으로 4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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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당사허비 (蘆堂祠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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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을 모셨던 사당의 옛터로 함경북도 경성읍 승암산에 있다. 노당사는 문종 때 김종서가 세웠다. 노당서원(魯塘書院)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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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북사(靖北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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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경성읍 승암산 노당 바로 아래에 있는데 사당 내에는 문숙공을 비롯하여 오연총, 김종서, 오박 4현(四賢)이 모셔져 있다.
문숙공의 22세손이신 익헌공 헌주(憲柱)가 10살 때인 숙종시대에 어느 날 꿈속에서 늙은 재상이 나타나서 “나는 문숙공이고 지금 경성 노당(蘆堂)에 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에서 빗물이 새어 괴롭구나. 네가 19세에 급제하여 24세에 함경감사가 되면 내 집을 중수하여 주기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그 후 공의 춘추 19세에 꿈속에서 한 늙은 재상이 나타나
헌주를 부르며 어사화를 주셨다.
꿈을 깨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중 과거시험에 나가신 바 시제가 꿈속에서 듣던 시구와 같아 장원급제하셨고 과연 24세 때 함경감사가 되셨다. 부임하신 후 노당을 조사한즉 과연 비가 새는지라 공께서 그 산 밑에 사우는 건축하고 “명륜각”과 “동서재”를 건축하여 현판을 “양현당(養賢堂)”이라고 하였고 사당은 “정북사”라고 사액을 내렸으며 서원은
“정북서원”이라고 하였다. 후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리었으나 경성군 오촌면 남부동에 살던 희천공(봉록군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복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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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대(元帥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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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남부동에 있는데 문숙공의 승전지(勝戰地)에 세운 비각으로 익헌공(헌주(憲柱))이 1718년(숙종 44)에 비문을 썼다. 정북사 동편의 해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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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대(壯士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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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단천읍에서 서쪽으로 41㎞에 위치해 있는데 문숙공의 승전공적비가 있다. 비문은 가선대부 영원군 행직(行直)공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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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암(元帥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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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변에 있는 큰 바위인데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시 진을 치고 계셨던 곳이라 하여 원수암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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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린포(道鱗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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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께서 여진정벌 하실 때 함산(咸山)에 쳐들어갔다가 복병을 만나 후퇴할 때 선덕진(宣德鎭) 광포(廣浦)에 이르러 물은 깊고 배도 없어 방황하던 중 어디선가 홀연히 잉어 떼가 일렬로 다리를 놓아 잉어의 등을 타고 건너자 사라졌다는 전설에서 도린포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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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대(侍中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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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北靑)의 마령(馬嶺)에 있는데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시 진을 치고 계셨던 곳으로 “시중대”라는 비석과 각(閣)이 있고 위토로 임야 59정보가 있다. 이 위토는 일제 시대 국유지로 편입되었으나 북청 종인들이 선조의 유적지 위토를 국유로 함이 부당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13년 만에 허가를 받아 위토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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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뢰사(萬賴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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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군 양가초리 신북청역 앞에 있는 문숙공의 진영(眞影)을 모신 사당으로 1898년(광무 2)에 건립하였다.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후 회군하시는 길에 북청 도덕사에 진을 치고 계실 때 그려진 영정이 있었는데, 그 후 어느 촌로의 꿈에 문숙공이 나타나 영정을 찾아달라 하여 암벽에서 찾아내 도덕사에 다시 모셨다. 그 후 영험이 높다는 소문이 돌아 도덕사가 번창하였다.
1897년 10월 18일 문숙공 영정을 도덕사에서 북청시내 종인 집에 옮겨 모셨다가 새로 만뢰사를 건축하여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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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사(朝陽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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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가산군 금학동에 있는데 인근 종인들이 사당을 건립하고 문숙공의 영정을 모시어 향사하고 있다. 1933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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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벽사(修闢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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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군 해보면 모평리에 있는 사당으로 1957년에 함평에 사는 여러 종인이 세웠으며 문숙공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하고 있다. 임천정사(林泉精舍)라는 강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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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남재(花南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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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동에 세운 문숙공을 모신 사당으로 화지문중 종인들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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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사(瑞岡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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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사당으로 1969년에 인근 종인들이 세웠다. 사당에는 시조 태사공을 비롯하여 문숙공, 문강공, 남원백, 함안백, 문현공 6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육영관(育英館)이 부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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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 동상 (文肅公 銅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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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의 우람한 동상이 1980년 5월 8일 통일로로 곧바로 통하는 서울 서소문공원에 건립되었다. 동상은 늠름하신 장군상으로 좌대와 더불어 도합 12미터 높이이며 좌대 둘레에는 9성을 부각 시설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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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곡리 선영 (蘆谷里 先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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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에는 태위공후 교리공 휘 돈(惇)파의 선영이다. 본래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동오리에 있던 선영을 1998년에 이장하여 조성된 선산이다. 이곳에는 태위공을 비롯한 4세의 실전한 선조를 위해 설단한 추원단과 증 이조참판 휘 석(晳), 효성공 휘 인경(仁鏡), 좌찬성 휘 이(理) 공 등이 계신다. 고강재(高岡齋)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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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忠烈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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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강화군에 있는 사당으로 1641년(인조 19)에 건립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순절하신 충헌공(忠憲公) 휘 전, 충정공(忠貞公) 휘 집(集), 충간공(忠簡公) 휘 계(棨)를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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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서원(龜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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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에 있는 서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건립되었으며 충헌공(忠憲公) 휘 전이 주벽이시고 동토공(童土公) 휘 순거(舜擧)과 용서공(龍西公) 휘 원거(元擧)이 종향(從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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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서원(龍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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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에 있으며 1724년(경종 4)에 세웠다. 명재 문성공(文成公) 휘 증(拯)과 아우 농은공(農隱公) 휘 추(推)를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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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서원(老江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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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숙종 38) 경북 성주에 세운 서원으로 병계공(屛溪公) 휘 봉구(鳳九)를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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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향사(咸平鄕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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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에 있는데 대언공의 증손이신 목사공(牧使公) 휘 길(吉)과 공의 아들 휘 덕생(德生)을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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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향교(竹皐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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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에 있으며 만돈암공(晩遯菴公) 휘 사석(師晳)의 향사와 공의 5대손 죽호공(竹湖公) 휘 섭(涉)도 종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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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연사(文淵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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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에 있으며 부마공(駙馬公) 휘 우(愚)의 증손 월오공(月塢公) 휘 규(奎)가 종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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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천서원(蒙泉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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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매화리에 있는데 우암공(憂菴公) 휘 시형(時衡)을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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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병서원(玉屛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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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군 영평면에 있는데 죽재공(竹齋公) 휘 인함(仁涵)의 5세손 존성재공(存省齋公) 휘 봉양(鳳陽)의 종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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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향교(金堤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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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에 있는 죽재공(竹齋公) 휘 인함(仁涵)의 증손 파원군(坡原君) 휘 비경(飛卿)과 구봉공(九峯公) 휘 여임(汝任)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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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충사(愍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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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금천에 있으며 이괄의 난 때의 순절하신 파령군(坡寧君) 휘 정준(廷俊)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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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퇴사(靜退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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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온양에 있는데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휘 지임(之任)의 현손이신 양심당공(養心堂公) 휘 현(俔)의 배향소이며 천서공(泉西公) 휘 곤(琨)의 종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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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향사(新寧鄕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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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신령에 있는데 파원군(坡原君) 휘 비경(飛卿)의 아드님 휘 명운(明運)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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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덕사(淸德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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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 있는데 판서공(判書公) 휘 이제(以濟)의 아드님이신 계안와공(計安窩公) 휘 기경(基慶)의 배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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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사(松江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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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에 있으며 병계공(屛溪公) 휘 봉구(鳳九)의 아우님이신 석문공(石門公) 휘 봉오(鳳五)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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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사(風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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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군 남평면에 있는데 직장공(直長公) 휘 정훈(廷勳)의 현손 휘 동정(東貞)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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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향사(靑松鄕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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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순절하신 순충공(純忠公) 휘 충우(忠祐)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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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사(旌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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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 있으며 추담공(秋潭公) 휘 수(銖)의 종형이신 참판공(判公) 휘 탁(鐸)을 임진왜란 순절공신으로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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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影烈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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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 있으며 원평군(原平君)의 5대손 휘 사복(思復)을 임진왜란 순절공신으로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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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서원(玉華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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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에 있는데 참의공(議公) 휘 은(垠)의 둘째 아드님이신 만돈암공(晩豚庵公) 휘 사석(師晳)의 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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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崇義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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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에 있는 사당으로 1399년(태조 6)에 세웠다. 고려 태조와 왕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문숙공께서 배향되셨고 문숙공은 고려 예종묘에도 배향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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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단(去思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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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제단으로 무호암공(無號菴公) 휘 필겸(弼兼)이 동래부사로 계실 때 잘 다스렸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단을 세워 봉사(奉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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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단(尹公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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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다대포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첨사공(僉使公) 휘 흥신(興信)과 공의 아우 휘 흥제(興悌)가 상포순절(相抱殉節)하신 유적으로 순절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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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대(臨鏡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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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큰 강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섬에 있는데 판도공의 현손이신 불복신(不服臣) 군수공(郡守公) 휘 과(科)께서 관직을 버리신 후 석벽(石璧)에 대명(台名)을 새기고 공이 항상 낚시를 즐기시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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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정(浮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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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달성군 논공면 가현리에 건립한 정자인데 진사공(進士公) 휘 대승(大承), 한림공(翰林公) 휘 명(鳴) 형제분이 원래 낙동강변에 세웠는데 그 후손이 옮겨서 새로 지었다. 정자에는 우암 송시열의 “만조승상택적막한림가(萬條丞相宅寂寞翰林家)”라는 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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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벽정(暎碧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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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달성군 다사면 문산동에 있는 정자로 아암공(牙巖公) 휘 인협(仁浹)께서 내려오셔서 세웠는데 큰 강변에 있어 경북의 명승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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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단(追慕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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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군 벽제읍 관산리에 있는 대언공(代言公) 휘 안적(安謫)의 제단인데 전국 각지의 후손들이 성의를 모아 설단하고 대언공이하 3위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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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공단(少府公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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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마정리에 있는 소부공의 제단으로 원래 추원단에 모셨던 비위(碑位)를 옮겨 소부공 이하 실전된 선조들을 모시고 있으며 재실도 신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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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모단(遠慕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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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양군 집현면 신당에 있는 원평군(原平君) 휘 목(穆)의 제단으로 전에는 신도비만 있었는데 근년에 후손들이 성금을 거두어 짓고 실전했던 공의 묘소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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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재(麗岡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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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에 있으며 태위공(太尉公) 휘 안비(安庇)이하 4세 5위를 모신 곳으로 1986년 6월에 태위공 후손들이 성의를 모아 재실을 신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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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재(龍岡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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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에 있는데 6세 지후공(祗候公) 휘 언인(彦仁)부터 남원백·함안백까지 모신 단소로서 1960년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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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서원(方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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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시 산동면 이평리에 있는데 문효공(文孝公) 휘 효손(孝孫)을 배향한 향소이다. 숙종 28년(1702년)에 설립되었으나 서원철폐 시 철훼되었다가 지난 1985년에 “방산서원 복설사업회”가 새로 복원하여 신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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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단(永慕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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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직천리(추원단에서 동쪽으로 4㎞쯤)에 있는 제단으로 판도공(版圖公) 휘 승례(承禮)와 공의 둘째 아드님이신 부윤공(府尹公) 휘 보로(普老) 등 8위를 모시고 있다. 1975년에 설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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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송향사(報松鄕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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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절사(節死)하신 금좌공(錦左公) 휘 사온(思溫)을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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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파영당(西坡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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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하호리에 있는데 조선 명종 때 좌의정을 지내셨던 서파공(西坡公) 휘 개(漑)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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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忠烈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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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다대포 첨사로 고립무원(孤立無援)한 가운데 치열한 전투를 벌려 순국하신 첨사공(僉使公) 휘 흥신(興信)과 역시 전투에서 순국하신 아우님 휘 흥제(興悌)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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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사(義烈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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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중화군 신흥면 용흥리에 있는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평양성을 점거한 왜군과 중화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시다가 용감하게 순국하시어 다 같이 호조참판을 추증 받으신 4위 휘 은형(殷衡), 은로(殷老), 인(麟), 붕(鵬)을 모시고 있다. 또한 중화군 중화면 낙민리 396번지에는 이 네 분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영조왕 때 건립한 의열비(義烈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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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단비(景慕壇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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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고로면 덕천마을에 있는데 숙종 때 병사공 휘 숙(淑)께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대계(大計)로 쌓은 성터에 세운 비(碑)로서 6·25동란 시 이 성을 주저항선으로 적군을 격퇴한 바 있고 사적으로 동문, 북문, 홍살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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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재(紹遠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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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남본동에 있는 재실로 1987년 예천 서창문중에서 후손들의 성력으로 건립하였다. 이곳 낙향조이신 통덕랑공(通德郞公) 휘 정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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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음재(龜陰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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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에 있는데 선조 8년(1575년)에 창건하였으며 참의공 휘 은(垠)의 일곱째 아드님이신 사직공 휘 사한(師寒)의 4대손이시며 임진왜란 순절공신이신 목사공 휘 탁(鐸), 목사공의 숙부이신 판서공 휘 언례(彦禮), 판서공의 아드님이며 의주 호조공신이신 추담공(秋潭公) 휘 선(銑) 등 세 분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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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사(玉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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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마서면 옥산리에 있으며 1922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환성공(喚猩公) 휘 광의(珖儀)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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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사(梅谷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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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리시 모현동 매곡에 있는데 매헌 윤봉길 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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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단(侍中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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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군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데 문정공(文定公) 휘 인첨(鱗瞻)이하 12위의 위패를 모셨다. 1982년에 후손 해진(海鎭)과 동찬(東澯)이 700만 원을 헌납하여 설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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