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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태위공파교리공종회

유물 및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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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遺物)

5대 사적지

선대 사적지

선대 사적지 현황

 

본문

 

m01.png 선대 사적지(先代史蹟地)

 

번호

명  칭 내  용

1

태사공 유허지

용연의 동쪽에 위치한 파평산의 중턱에 큰 돌로 쌓아놓은 흔적이 남아 있고 그 부근에 미타사라는 절이 있는데 석축이 있는 곳은 시조 태사공의 주택이 있던 곳이라고 하며 3세 복야공께서 절을 지어 금강사(金剛寺)라 하였다는 곳을 금강사 유허지라고 부르는데 미타사에는 문숙공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2

여음진(如飮津)

시조 태사공께서 파주의 사저에서 말을 타시고 임진강을 건너 개경(開京)을 내왕하실 때 항상 강물이 양쪽으로 딱 갈라져 단숨에 강을 건너시었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물결 끊고 마시듯 강을 건넜다하여 이곳을 여음진이라고 불렀다하며 여음진이 변해서 임진강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3

봉강서원유허지
(鳳岡書院遺墟址)

서기 1833년(순조 33)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암동에 세웠던 봉강서원이 서원철폐 시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는데 태사공의 묘소에서 남쪽으로 4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4

노당사허비
(蘆堂祠墟碑)

문숙공을 모셨던 사당의 옛터로 함경북도 경성읍 승암산에 있다. 노당사는 문종 때 김종서가 세웠다. 노당서원(魯塘書院)이라고도 한다.

5

정북사(靖北祠)

함경북도 경성읍 승암산 노당 바로 아래에 있는데 사당 내에는 문숙공을 비롯하여 오연총, 김종서, 오박 4현(四賢)이 모셔져 있다.

문숙공의 22세손이신 익헌공 헌주(憲柱)가 10살 때인 숙종시대에 어느 날 꿈속에서 늙은 재상이 나타나서 “나는 문숙공이고 지금 경성 노당(蘆堂)에 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에서 빗물이 새어 괴롭구나. 네가 19세에 급제하여 24세에 함경감사가 되면 내 집을 중수하여 주기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그 후 공의 춘추 19세에 꿈속에서 한 늙은 재상이 나타나 헌주를 부르며 어사화를 주셨다.

꿈을 깨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중 과거시험에 나가신 바 시제가 꿈속에서 듣던 시구와 같아 장원급제하셨고 과연 24세 때 함경감사가 되셨다. 부임하신 후 노당을 조사한즉 과연 비가 새는지라 공께서 그 산 밑에 사우는 건축하고 “명륜각”과 “동서재”를 건축하여 현판을 “양현당(養賢堂)”이라고 하였고 사당은 “정북사”라고 사액을 내렸으며 서원은 “정북서원”이라고 하였다. 후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리었으나 경성군 오촌면 남부동에 살던 희천공(봉록군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복건하였다.

6

원수대(元帥臺)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남부동에 있는데 문숙공의 승전지(勝戰地)에 세운 비각으로 익헌공(헌주(憲柱))이 1718년(숙종 44)에 비문을 썼다. 정북사 동편의 해변에 있다.

7

장사대(壯士臺)

함경남도 단천읍에서 서쪽으로 41㎞에 위치해 있는데 문숙공의 승전공적비가 있다. 비문은 가선대부 영원군 행직(行直)공이 썼다.

8

원수암(元帥岩)

두만강 변에 있는 큰 바위인데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시 진을 치고 계셨던 곳이라 하여 원수암이라고 부른다.

9

도린포(道鱗浦)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하실 때 함산(咸山)에 쳐들어갔다가 복병을 만나 후퇴할 때 선덕진(宣德鎭) 광포(廣浦)에 이르러 물은 깊고 배도 없어 방황하던 중 어디선가 홀연히 잉어 떼가 일렬로 다리를 놓아 잉어의 등을 타고 건너자 사라졌다는 전설에서 도린포라 일컫는다.

10

시중대(侍中臺)

함경남도 북청(北靑)의 마령(馬嶺)에 있는데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시 진을 치고 계셨던 곳으로 “시중대”라는 비석과 각(閣)이 있고 위토로 임야 59정보가 있다. 이 위토는 일제 시대 국유지로 편입되었으나 북청 종인들이 선조의 유적지 위토를 국유로 함이 부당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13년 만에 허가를 받아 위토를 되찾았다.

11

만뢰사(萬賴祠)

함경남도 북청군 양가초리 신북청역 앞에 있는 문숙공의 진영(眞影)을 모신 사당으로 1898년(광무 2)에 건립하였다.

문숙공께서 여진정벌 후 회군하시는 길에 북청 도덕사에 진을 치고 계실 때 그려진 영정이 있었는데, 그 후 어느 촌로의 꿈에 문숙공이 나타나 영정을 찾아달라 하여 암벽에서 찾아내 도덕사에 다시 모셨다. 그 후 영험이 높다는 소문이 돌아 도덕사가 번창하였다.

1897년 10월 18일 문숙공 영정을 도덕사에서 북청시내 종인 집에 옮겨 모셨다가 새로 만뢰사를 건축하여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12

조양사(朝陽祠)

평안북도 가산군 금학동에 있는데 인근 종인들이 사당을 건립하고 문숙공의 영정을 모시어 향사하고 있다. 1933년에 건립하였다.

13

수벽사(修闢祠)

전남 함평군 해보면 모평리에 있는 사당으로 1957년에 함평에 사는 여러 종인이 세웠으며 문숙공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하고 있다. 임천정사(林泉精舍)라는 강당도 있다.

14

화남재(花南齋)

1958년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동에 세운 문숙공을 모신 사당으로 화지문중 종인들이 세웠다.

15

서강사(瑞岡祠)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사당으로 1969년에 인근 종인들이 세웠다. 사당에는 시조 태사공을 비롯하여 문숙공, 문강공, 남원백, 함안백, 문현공 6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육영관(育英館)이 부설되어 있다.

16

문숙공 동상
(文肅公 銅像)

문숙공의 우람한 동상이 1980년 5월 8일 통일로로 곧바로 통하는 서울 서소문공원에 건립되었다. 동상은 늠름하신 장군상으로 좌대와 더불어 도합 12미터 높이이며 좌대 둘레에는 9성을 부각 시설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17

노곡리 선영
(蘆谷里 先塋)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에는 태위공후 교리공 휘 돈(惇)파의 선영이다. 본래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동오리에 있던 선영을 1998년에 이장하여 조성된 선산이다. 이곳에는 태위공을 비롯한 4세의 실전한 선조를 위해 설단한 추원단과 증 이조참판 휘 석(晳), 효성공 휘 인경(仁鏡), 좌찬성 휘 이(理) 공 등이 계신다. 고강재(高岡齋) 재실이 있다.

18

충렬사(忠烈祠)

경기도 강화군에 있는 사당으로 1641년(인조 19)에 건립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순절하신 충헌공(忠憲公) 휘 전, 충정공(忠貞公) 휘 집(集), 충간공(忠簡公) 휘 계(棨)를 배향하고 있다.

19

구산서원(龜山書院)

충남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에 있는 서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건립되었으며 충헌공(忠憲公) 휘 전이 주벽이시고 동토공(童土公) 휘 순거(舜擧)과 용서공(龍西公) 휘 원거(元擧)이 종향(從享)하고 있다.

20

용계서원(龍溪書院)

충남 홍성에 있으며 1724년(경종 4)에 세웠다. 명재 문성공(文成公) 휘 증(拯)과 아우 농은공(農隱公) 휘 추(推)를 배향하고 있다.

21

노강서원(老江書院)

1712년(숙종 38) 경북 성주에 세운 서원으로 병계공(屛溪公) 휘 봉구(鳳九)를 배향하고 있다.

22

함평향사(咸平鄕祠)

전남 함평에 있는데 대언공의 증손이신 목사공(牧使公) 휘 길(吉)과 공의 아들 휘 덕생(德生)을 배향하고 있다.

23

죽고향교(竹皐鄕校)

경북 예천군에 있으며 만돈암공(晩遯菴公) 휘 사석(師晳)의 향사와 공의 5대손 죽호공(竹湖公) 휘 섭(涉)도 종향하고 있다.

24

문연사(文淵祠)

경북 고령군에 있으며 부마공(駙馬公) 휘 우(愚)의 증손 월오공(月塢公) 휘 규(奎)가 종향되고 있다.

25

몽천서원(蒙泉書院)

경북 울진군 매화리에 있는데 우암공(憂菴公) 휘 시형(時衡)을 향사하고 있다.

26

옥병서원(玉屛書院)

경기도 포천군 영평면에 있는데 죽재공(竹齋公) 휘 인함(仁涵)의 5세손 존성재공(存省齋公) 휘 봉양(鳳陽)의 종향소이다.

27

김제향교(金堤鄕校)

전북 김제에 있는 죽재공(竹齋公) 휘 인함(仁涵)의 증손 파원군(坡原君) 휘 비경(飛卿)과 구봉공(九峯公) 휘 여임(汝任)의 향소이다.

28

민충사(愍忠祠)

황해도 금천에 있으며 이괄의 난 때의 순절하신 파령군(坡寧君) 휘 정준(廷俊)의 향소이다.

29

정퇴사(靜退祠)

충남 온양에 있는데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휘 지임(之任)의 현손이신 양심당공(養心堂公) 휘 현(俔)의 배향소이며 천서공(泉西公) 휘 곤(琨)의 종향소이다.

30

신령향사(新寧鄕祠)

경북 신령에 있는데 파원군(坡原君) 휘 비경(飛卿)의 아드님 휘 명운(明運)의 향소이다.

31

청덕사(淸德祠)

경남 진주에 있는데 판서공(判書公) 휘 이제(以濟)의 아드님이신 계안와공(計安窩公) 휘 기경(基慶)의 배향소이다.

32

송강사(松江祠)

경북 영천에 있으며 병계공(屛溪公) 휘 봉구(鳳九)의 아우님이신 석문공(石門公) 휘 봉오(鳳五)의 향소이다.

33

풍산사(風山祠)

전남 나주군 남평면에 있는데 직장공(直長公) 휘 정훈(廷勳)의 현손 휘 동정(東貞)의 향소이다.

34

청송향사(靑松鄕祠)

병자호란 때 순절하신 순충공(純忠公) 휘 충우(忠祐)의 향소이다.

35

정충사(旌忠祠)

경남 진주에 있으며 추담공(秋潭公) 휘 수(銖)의 종형이신 참판공(判公) 휘 탁(鐸)을 임진왜란 순절공신으로 향사하고 있다.

36

창렬사(影烈祠)

경남 진주에 있으며 원평군(原平君)의 5대손 휘 사복(思復)을 임진왜란 순절공신으로 배향하고 있다.

37

옥화서원(玉華書院)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에 있는데 참의공(議公) 휘 은(垠)의 둘째 아드님이신 만돈암공(晩豚庵公) 휘 사석(師晳)의 향소이다.

38

숭의전(崇義殿)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에 있는 사당으로 1399년(태조 6)에 세웠다. 고려 태조와 왕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문숙공께서 배향되셨고 문숙공은 고려 예종묘에도 배향되시었다.

39

거사단(去思壇)

부산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제단으로 무호암공(無號菴公) 휘 필겸(弼兼)이 동래부사로 계실 때 잘 다스렸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단을 세워 봉사(奉祀)하고 있다.

40

윤공단(尹公壇)

부산 다대포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첨사공(僉使公) 휘 흥신(興信)과 공의 아우 휘 흥제(興悌)가 상포순절(相抱殉節)하신 유적으로 순절비가 있다.

41

임경대(臨鏡臺)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큰 강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섬에 있는데 판도공의 현손이신 불복신(不服臣) 군수공(郡守公) 휘 과(科)께서 관직을 버리신 후 석벽(石璧)에 대명(台名)을 새기고 공이 항상 낚시를 즐기시던 곳이다.

42

부강정(浮江亭)

경북 달성군 논공면 가현리에 건립한 정자인데 진사공(進士公) 휘 대승(大承), 한림공(翰林公) 휘 명(鳴) 형제분이 원래 낙동강변에 세웠는데 그 후손이 옮겨서 새로 지었다. 정자에는 우암 송시열의 “만조승상택적막한림가(萬條丞相宅寂寞翰林家)”라는 시구가 있다.

43

영벽정(暎碧亭)

경북 달성군 다사면 문산동에 있는 정자로 아암공(牙巖公) 휘 인협(仁浹)께서 내려오셔서 세웠는데 큰 강변에 있어 경북의 명승지로 손꼽힌다.

44

추모단(追慕壇)

경기도 고양군 벽제읍 관산리에 있는 대언공(代言公) 휘 안적(安謫)의 제단인데 전국 각지의 후손들이 성의를 모아 설단하고 대언공이하 3위를 모시고 있다.

45

소부공단(少府公壇)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마정리에 있는 소부공의 제단으로 원래 추원단에 모셨던 비위(碑位)를 옮겨 소부공 이하 실전된 선조들을 모시고 있으며 재실도 신축하였다.

46

원모단(遠慕壇)

경남 진양군 집현면 신당에 있는 원평군(原平君) 휘 목(穆)의 제단으로 전에는 신도비만 있었는데 근년에 후손들이 성금을 거두어 짓고 실전했던 공의 묘소도 되찾았다.

47

여강재(麗岡齋)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에 있으며 태위공(太尉公) 휘 안비(安庇)이하 4세 5위를 모신 곳으로 1986년 6월에 태위공 후손들이 성의를 모아 재실을 신축하였다.

48

용강재(龍岡齋)

전북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에 있는데 6세 지후공(祗候公) 휘 언인(彦仁)부터 남원백·함안백까지 모신 단소로서 1960년에 세웠다.

49

방산서원(方山書院)

전남 구례시 산동면 이평리에 있는데 문효공(文孝公) 휘 효손(孝孫)을 배향한 향소이다. 숙종 28년(1702년)에 설립되었으나 서원철폐 시 철훼되었다가 지난 1985년에 “방산서원 복설사업회”가 새로 복원하여 신축하였다.

50

영모단(永慕壇)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직천리(추원단에서 동쪽으로 4㎞쯤)에 있는 제단으로 판도공(版圖公) 휘 승례(承禮)와 공의 둘째 아드님이신 부윤공(府尹公) 휘 보로(普老) 등 8위를 모시고 있다. 1975년에 설단하였다.

51

보송향사(報松鄕祠)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절사(節死)하신 금좌공(錦左公) 휘 사온(思溫)을 모신 사당이다.

52

서파영당(西坡影堂)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하호리에 있는데 조선 명종 때 좌의정을 지내셨던 서파공(西坡公) 휘 개(漑)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53

충렬사(忠烈祠)

부산 동래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다대포 첨사로 고립무원(孤立無援)한 가운데 치열한 전투를 벌려 순국하신 첨사공(僉使公) 휘 흥신(興信)과 역시 전투에서 순국하신 아우님 휘 흥제(興悌)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54

의열사(義烈祠)

평안남도 중화군 신흥면 용흥리에 있는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평양성을 점거한 왜군과 중화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시다가 용감하게 순국하시어 다 같이 호조참판을 추증 받으신 4위 휘 은형(殷衡), 은로(殷老), 인(麟), 붕(鵬)을 모시고 있다. 또한 중화군 중화면 낙민리 396번지에는 이 네 분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영조왕 때 건립한 의열비(義烈碑)가 있다.

55

경모단비(景慕壇碑)

경북 군위군 고로면 덕천마을에 있는데 숙종 때 병사공 휘 숙(淑)께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대계(大計)로 쌓은 성터에 세운 비(碑)로서 6·25동란 시 이 성을 주저항선으로 적군을 격퇴한 바 있고 사적으로 동문, 북문, 홍살문이 있다.

56

소원재(紹遠齋)

경북 예천군 남본동에 있는 재실로 1987년 예천 서창문중에서 후손들의 성력으로 건립하였다. 이곳 낙향조이신 통덕랑공(通德郞公) 휘 정을 모셨다.

57

구음재(龜陰齋)

경남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에 있는데 선조 8년(1575년)에 창건하였으며 참의공 휘 은(垠)의 일곱째 아드님이신 사직공 휘 사한(師寒)의 4대손이시며 임진왜란 순절공신이신 목사공 휘 탁(鐸), 목사공의 숙부이신 판서공 휘 언례(彦禮), 판서공의 아드님이며 의주 호조공신이신 추담공(秋潭公) 휘 선(銑) 등 세 분을 모셨다.

58

옥산사(玉山祠)

충남 서천군 마서면 옥산리에 있으며 1922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환성공(喚猩公) 휘 광의(珖儀)를 모셨다.

59

매곡사(梅谷祠)

전북 이리시 모현동 매곡에 있는데 매헌 윤봉길 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60

시중단(侍中壇)

파주군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데 문정공(文定公) 휘 인첨(鱗瞻)이하 12위의 위패를 모셨다. 1982년에 후손 해진(海鎭)과 동찬(東澯)이 700만 원을 헌납하여 설단하였다.